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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문득 자미두수가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되어 있는지 궁금해 검색해 봤습니다.

'紫微數'로 검색하면 세종12년(1430년) 기사가 하나 더 나오지만, '紫微斗數'로 검색하면 단 하나, 인조22년(1644년) 기사만 나오더군요. 내용은 인조반정에 성공한 공신 심기원의 역모와 관련된 대질심문입니다.

 <심곡비결> 서문에 심곡선생 일화를 전에 읽었었는데, 다시 이것저것 찾다가 정독하고 보니 심기원이라는 동일 인물이 보이더군요. <고금명성도>에서는 구인후의 명식도 발견하고..

관련 내용을 참고로 올립니다.



1.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pa_12203021_004&grp=&aid=&sid=15925804&pos=0
인조 45권, 22년(1644 갑신 / 명 숭정(崇禎) 17년) 3월 21일(기유) 4번째기사, 죄인 심기원·권억 등의 공초
죄인 심기원이 공초하기를,
..
그런데 요즈음 한선(漢船)이 들어온다는 소식으로 인해 내외가 소란스러우므로 신의 지나친 염려에, 혹시 사변이 생긴다면 국가가 믿는 것이라고는 무사뿐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신이 일찍이 유념하여 모집하였고..
(중략)..
군 관을 호궤(犒饋:음식을 베풀어 군사를 위로함)하는 일과 같은 경우는 각청(各廳)이 매년 봄가을에 으레이 다 군관을 호궤하는데 유독 신에게만 무슨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이른바 무사를 방안에 모이게 했다고 한 말은 전부터 서로 아는 무부와 편비 무리가 문정에 출입하기도 하고 혹은 오래 머물다가 함께 잠을 자기도 하였으니, 이는 예사로운 일인데 무슨 모의하는 것이 있어서 그리하였겠습니까.


所謂論命云者, 一家子姪輩, 學習紫微斗數, 遇人輒問時月, 畫紙開局, 則豈但爲黃瀷推命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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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신수(身數:한 사람의 운수)를 논했다고 한 말은 한 집안의 자질(아들, 조카)들이 자미두수(紫微斗數)를 학습하여 바깥 사람을 만나면 항상 생월(生月) 생시(生時)를 묻고 종이에 그어 풀어보았으니, 어찌 황익만을 위해 신수를 추산한 것이겠습니까?


..
(중략)..
구인후(具仁垕)광주의 군관과 형리(刑吏)들을 추문하니, 모두 말하기를,
권억이 사실 제색(諸色)의 군병을 집합시켰고 안오륜(安五倫)·최사박(崔嗣朴)이란 자가 그 일을 맡았는데 우리들은 무슨 일 때문인지 몰랐다.” 하였다. 황익(黃瀷)·이원로(李元老)심기원(沈器遠)·이일원(李一元) 등을 대질[원문은 면질(面質)]시켰는데, 황익이 말하기를,
“상공이 나의 사주를 물은 일과 무사를 불러 모아 술을 빚고 과녁을 설치한 것은 모두 무슨 뜻입니까?” 하니,
기원이 말하기를,


兒輩皆曉紫微數, 故悶汝困頓, 試令推步, 非以汝爲將領計也。 聚會軍官, 觀射設帿, 乃扈衛廳通行之規, 而汝反以此爲陰謀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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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아이들이 다 자미수(紫微數) 를 알기 때문에 너의 곤란한 신세가 가련하여 시험삼아 추수(推數)해 보게 한 것이지, 너를 장수로 삼기 위한 생각은 아니었다. 군관을 모아놓고 과녁을 설치해 활쏘기를 한 것은 곧 호위청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규례인데 너는 도리어 이것을 가지고 음모라고 하느냐?

하고,
황익이 말하기를,
“그저께 저녁에는 큰일을 하려는 자는 반드시 생사를 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어찌 생사에 마음이 흔들리십니까?” 하니,
기원이 말하기를,
“이는 한선(漢船)이 나올 것을 걱정하여 한 말이다. 내가 이제 만번 죽어도 애석할 것이 없는 것은 잘못 너를 사람으로 여기고 이러한 부질없는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


2. <심곡비결>

심곡 김치선생에 관하여
  심곡 김치선생 (1577~1625)은 조선 선조 30년에 27세로 문과에 급제한 분이다. 그는 부평부사를 지낸 김시회의 아들로 태어나 숙부이자 임진왜란 때 진주성의 영웅 김시민에게 양자로 들어간다. 본관은 안동이며, 자(字)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 또는 심곡(深谷)으로 대제학을 지내셨다.
  광해군의 학정이 날로 심해지자 병을 핑계로 벼슬을 사직하고는 서울 남산골에 은거하고 있는데, 하루는 심기원(沈器遠 : 광해군때 사람으로 대사간·좌의정을 역임)이 찾아와 친구의 아들이라 하며 을미년 11 월 초7 일 모시 생의 추명을 부탁했다. 일설에는 자기와 다른 다섯 사람의 命을 감정하러 왔는데, 심곡 선생이 추명하길 “모두 얼마 후에 판서가 될 명”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친구의 아들이라 하면서 능양군의 命을 내놨다고 한다. 심곡선생이 한참을 살피다가 군왕 사주라 하면서 큰절을 올리자, 심기원이 놀라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당시에 역모가 발각되면 반역죄로 3대가 몰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심곡선생이 정색을 하며 “실은 나의 命을 살펴보면 곧 참형을 당해 죽게 됩니다. 그래서 관직을 사임하고 은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명을 보고 또 오늘 일진을 살펴 보건대 이름에 삼수변 있는 귀인을 만나면, 내 命을 3년 연장할 수 있다오. 그대가 아마 내 귀인인 듯 싶은데, 혹시 성(姓)에 삼수변이 들어 있지 않소?"
  이렇게 말하자, 심기원이 크게 놀라며 인조반정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조금 전에 군왕 사주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들이 추대하려는 왕족이라는 말과 함께, 판서된다는 命들이 바로 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들을 하며 거사의 자문을 구하게 된다. 그래서 심곡 선생이 거사 날짜를 잡아주었고, 거사가 성공하여 정권이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심곡선생은 그들이 몰아낸 대북파에 속하여 유배지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게 된다. 그러다 거사가 성사하도록 자문을 해준 공로를 앞세운 심기원 등의 노력에 힘입어 동래부사를 거쳐 경상관찰사로 부임하게 된다.

  예전에 심곡 선생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중국의 유명한 역술가에게 운명을 보게 되었는데 그 술객이 命을 평한 후에 “華山 騎牛客 頭帶 一枝花(화산에 소를 타고 지나는 길손이/ 머리에 한 송이 꽃을 꽂았네)" 열자만 적어 주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뭇인지 모르고 지나왔는데, 뒷날 경상관찰사가 되어서 도민들을 다스리고 또 틈틈이 후학들을 양성했는데, 자미두수가 인조반정의 성공을 예언하는 등 높은 적중률을 증명하였고, 더구나 심곡선생은 서인들의 원수인 대북파에 속해서 혹 역혁명을 획책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여기에 자미두수로 운명을 미리 안 경상도 선비들이 과거를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그렇지 않아도 심곡선생을 불안하게 여겼던 서인들은 이를 빌미로 심곡선생을 죽이고 아울러 심곡비결을 금서로 만들어 수거하여 태우고자 하였다.
  이에 죽기 전에 고향(안동)이나 방문하자고 생각한 심곡선생은 학질에 걸렸다고 핑계를 대고, “학질에 걸려 낫질 않으면 소를 거꾸로 앉아서 타고 다니면 학질이 낫는다”고 하면서 거꾸로 소를 타고 자기 관하의 여러 고을을 순시하며 고향을 향해 떠났다. 어느 날 고성 땅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날 객사에서 시중드는 기생이 심곡선생의 머리를 짚어 보니 그 시간부터 정신이 혼미하게 되더니 영면하게 되었다.
  한데 고성을 들어가는 고개 이름이 화산(華山)이고 그 고개를 넘을 때 소를 거꾸로 타고 있었고(騎牛客) 머리에(頭帶) 손을 댄 기생의 이름이 일지화(一枝花)였다. 그래서 “華山 騎牛客頭帶 一枝花”라는 말이 그대로 실현되었고, 그때가 인조반정을 치른지 꼭 3년째라고 하니 자기가 평한 命대로 살았던 것이다.
  사실 소를 거꾸로 탄 것은 암살자에게 마음 편히 죽이라는 뜻과 같다. 조선을 창업하기 전에 정몽주선생을 이방원(훗날의 태종)이 주살할 때도, 이를 미리 눈치 챈 포은선생이 말을 거꾸로 타고 선죽교를 지나다 죽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 심곡선생도 자신에게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 소를 거꾸로 타고 가다가 아마 일지화라는 기생에게 독살당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중략)


3. <고금명성도> 건 152p



참고내용
- 인조반정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C%A1%B0%EB%B0%98%EC%A0%95
- 소현세자(昭顯世子)는 어째서 부왕(父王) 인조(仁祖)에 의해 독살되었는가?
http://pann.nate.com/talk/313612475
- 조선조(朝鮮朝) 상신록 (相臣錄) http://kksga99.hosting.paran.com/bohak/sangsin0101.htm
<계서야담> 권 3
   http://koreaghost.culturecontent.com/ghost2/ghost2_4_a_view.asp?g_num=cp0415124108&Gotopage=3
-
염라대왕이 된 김치 (<청구야담>, <동야휘집>, <기문총화>, <쇄어>, <선언편>, <성수총화> 등 참고)
   http://jangrye.culturecontent.com/text.asp?menu=story&subnum=4&num=1
- <청구야담>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72
- 김치와 심기원 http://cafe.naver.com/avantgarde62.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08&
 
※ 관련 인물정보
- 인조 이종(仁祖 李倧, 1595∼1649, 조선 제16대왕, 재위 1623∼1649) 인물정보
- 소현세자 이왕(昭顯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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